인도의 커피 역사는 자바보다 오래되었다.
바바부단이라는 인도의 풍운아가 커피가 유럽에 소개되기 이전에 이집트에서 커피 묘목을 몰래 가져다가 고향 언덕에 심은 해는 1650년이다.
인도에서 자라난 커피나무는 네덜란드로 들어가서 식물원에 심어졌다.
또 이 식물원에서 재배되던 커피나무는 예멘에서 반입한 커피 사이에서 변종을 탄생시켰다.
이 변종의 커피나무가 자바로 건너가 자바 커피의 조상이 된 것이다.
인도의 좋은 커피들은 마이조르로 대표되는 카르나타카 주(州)와 마드라스로 대표되는 타밀나두 주(州)에서 많이 생산된다.
이외에도 케랄라 주(州)의 말라바르와 닐기리(홍차의 산지로 유명하다)에서도 우수한 커피가 재배된다.
인도 커피 총 생산량 중 아라비카 커피 생산량은 거의 50%이며, 전체 커피 수출량은 세계 10위이다.
한동안 인도에도 좋은 커피의 생산에 많은 문제가 도사렸다.
특히 경직된 정부는 좋은 커피, 나쁜 커피 가릴 것 없이 양에 따른 일괄적 세금을 매겼고, 특별한 커피 산지가 보호받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는 1992년부터 우수 경작지의 A급 원두에는 벨리 너겟, 또는 너겟(Nugget)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인정하는 제도를 만들고 우수 농장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인도의 커피들 중에서 '몬수닝(monsooning)'이라고 알려져 있는 독특한 숙성과정을 거친 커피는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특별한 관심을 끌고 있다.
상품과 사람이 배로 운송되던 시절, 인도에서 유럽까지 배로 가려면 몇 달이 걸렸다.
이 항해 기간 동안 푸른색의 원두는 높은 습도에 노출되게 되는데, 항해가 끝날 때쯤엔 원두가 푸른색에서 신비롭고 은은한 황색으로 변해 있었다.
인도의 커피에 맛을 들인 고객들은 항해 기간이 짧아진 후 같은 커피에서 독특함이 사라졌음에 당혹케 했다.
그래서 인도의 커피 생산자들은 고객이 원하는 맛을 찾기 위해 몬수닝의 과정을 새로이 도입한 것이다.
'몬순'이란 인도의 남서쪽에서 5~6월에 발생하는 일종의 장마인데, 우기와 건기가 일정기간 반복된다.
이 기간 동안 원두를 12~20센티 정도로 쌓아 특별한 건물 한쪽에 닷새 정도 펼쳐둔다.
그리고는 원두에 햇볕이 골고루 내려 쪼이도록 간간이 갈퀴질을 해준다.
이를 몇 번 반복한 후 숙성을 위한 포대(빽빽하지 않고 헐겁게 넣는다)에 원두를 넣고 몬순 바람을 쏘인다.
7주 동안 원두는 포대에서 풀려졌다가 다시 담아져 쌓여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몬수닝의 영향을 받지 않은 커피들을 골라내기 위한 수작업(핸드 픽)을 거쳐 수출용으로 포장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도 커피는 특별한 커피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인도와 같이 오랜 항해 과정으로 인해 커피가 잘못 변질되었던 인도네시아의 많은 커피들도 숙성 커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인도를 제외한 나라의 커피들은 몬순 기후로 인한 숙성 과정이 아니므로 '몬수니드 커피'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숙성 커피를 '에이지드'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의 <에이지드 수마트라>나 <에이지드 자바> 커피도 추억 속의 명품들이다.
여하튼 인도의 몬수닝을 거친 커피는 <몬수니드 말라바>와 <몬수니드 바사니살리>가 유명하다.
이 중에서 몬수니드 말라바가 많이 판매된다.
서울의 한 카페에 '마드라스 커피'라는 메뉴가 있어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마셔본 적이 있다.
그 맛은 <#%$*^!&@??>였다.
꽝이라는 이야기.
분명 인스턴트 커피로 만든 듯 향기도 없고 탁한 느낌만 받쳐왔다.
물론 진짜 마드라스 커피는 감미로운 향기와 깊은 풍미, 잔잔한 신맛을 지닌 좋은 커피이다.
1715년, 예멘에서 40그루의 커피나무가 인도양에 위치한 레위니옹 섬(아프리카에 더 가깝다)으로 옮겨졌다.
불행하게도 단 두 그루만이 수송 중에 살아 남았지만 경작지는 점차 넓혀져 갔고 1719년 무렵에는 최초의 커피 농원의 문이 열렸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이 섬의 통치자는 커피산업을 보다 강화하기 위한 칙령을 발표했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간에 이 섬의 모든 주민들은 매년 100그루의 커피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법으로 공포된 것이다.
1723년에는 이 법이 강화되었다.
모든 노예들은 200그루의 커피나무를 심어야 하고 커피나무를 훼손시킨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 최초의 <부르봉 커피>가 탄생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시대에 이 섬의 이름이 '부르봉'이었기 때문이다.
부르봉 커피라는 명칭은 이곳의 나무들이 다른 나라로 이식되어 가면서 따라갔다.
브라질이 부르봉 커피라는 호칭을 최초로 사용한 것처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레위니옹의 커피의 후손들은 브라질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로 번져나가 많은 곳에서 개량되어 재배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레위니옹에서는 커피가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진짜 부르봉 커피 맛을 볼 기회는 거의 사라졌다는 이야기이다.